
마라톤의 전설 이봉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비롯해, 세계 대회에서 모두 9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한국 마라톤 역사의 큰 획을 그었습니다.
기량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 세계 랭킹 1위까지 오르기도 했었는데요. 2000년에 수립한 2시간 7분 20초의 한국 최고 기록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짐작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건강했던 이봉주는 재작년 초 갑자기 근육긴장이 이상증이라는 난치병을 얻게 됐습니다. 현역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온종일 묵묵히 달리는 게 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뚝심으로 무려 41차례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는데 그야말로 다시는 없을 대기록입니다. 근래 들어와서는 축구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작정 천지사방으로 뛰어다녀 ‘봉출기몰’이라는 새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요.
너무나 활기차던 이봉주에게 근육긴장이상증, 영어로 ‘디스토니아’라는 난치병이 닥치게 되는데 이 병의 증상은 고개를 앞으로 반쯤 숙여 어깨가 움츠러들고 등과 허리가 구부정해지는 병입니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근육이 비틀어지거나 비정상적인 자세를 취하는 신경질환으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원인불명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는 “배 아래쪽 근육이 계속 당기는데 그래서 허리를 펴려면 힘을 줘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렵고 걸을 때 숨이 찰 뿐만 아니라 잘 때도 바로 누우면 머리가 들리기 때문에 옆으로 돌아누워야 합니다. 게다가 근육 경련이 끊이지 않아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잔 날도 많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자신이 암흑터널에 있는것 같고 평생 이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다’고도 밝혔는데 그는 크고 작은 병원들을 다녀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과 점점 변해가는 자신의 체형에 바깥 활동이 두려와 주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1년 넘게 스스로 많이 위축되었고 속으로 많이 울었다고 하는데요. 조심스럽게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운동을 너무 많이 한 과부화가 원인이 된 것은 아닐지 추측해 볼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현역 때 연습량까지 합치면 지구를 대여섯 바퀴쯤 도는 거리를 뛰었던 그는 ‘마라톤 선수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병은 아니기 때문에 달리기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저 스스로 몸 관리에 방심했던 부분이 쌓였다가 일순간에 터진 게 아닌가 싶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남 탓을 하기는커녕 불청객 난치병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원인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수술을 받고도 차도가 없고, 회복이 더디기만해 한숨을 내쉬곤 했는데요.
짝발과 평발의 약점을 떨쳐내고 투지와 끈기의 아이콘으로 살아온 그인데도 때때로 밀려드는 좌절감과 나약한 마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편, 이봉주는 과거 한국 마라톤의 전설적인 조련사 정봉수 감독으로부터 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감독은 황영조, 이봉주 등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을 배출하면서 대한민국 마라톤을 세계적인 수준에 올려놓은 명장인데요.
정감독에게 훈련을 받던 이봉주는 항상 성실했고 아무리 힘든 훈련도 묵묵히 해냈다고 하는데 그가 사용하는 방은 언제나 깨끗했고 침대나 책상 등 모든 것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싫은 소리 한번 못하지만 한번 아니다 싶으면 그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는데요. 이후 감독과 쌓였던 갈등이 터지면서 부당한 처우에 반발하며 소속팀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당시 이봉주는 후배들을 이끌고 소속팀을 뛰쳐나와 지방 여관을 전전하며 훈련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육상계에서는 ‘이봉주는 이제 끝났다.’, ‘이봉주가 스승 정봉수 감독을 배신했다.’는 등 여러 말들이 떠도는데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감독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정감독의 빈소를 찾은 이봉주는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해 찾아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면목이 없다.”

“나로 인해 건강이 악화됐다고 들었는데 정말 죄송하다. 감독님은 무명인 내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주셨다. 감독님으로부터 배운 마라톤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아직도 가장 힘이 되고 있다.”며 정 감독에게 사죄와 감사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현역생활을 뒤로하고 예능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던 그는 지난해 1월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산다’ 사이판 전지훈련 촬영 중 타이어 끌기 훈련을 진행하다 갑자기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데요.
사이판 전지훈련이 병의 원인이 아니냐는 추측에 소속사 측은 ‘허리 외상이 아니라 신경조직계통 질환’이라고 밝혔는데요.
이봉주 또한 “사이판에서 훈련도 많이 하고 경기도 했다. 한 번은 모래사장에서 폐타이어에 동료를 앉혀놓고 끄는 게임을 했는데, 아무리 끌어도 타이어가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 팀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길래 그 순간 힘을 과도하게 썼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몸에 무리가 오지 않았나 추측한다”고 말했습니다.

“1시간 만이라도 똑바로 서서 뛰는 게 소원”이라고 말미에 말을 꺼낸 그는 “(완치 후)후원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이라며 향후 계획을 밝혔는데요.
최근 그에게 좋은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국민 마라토너’로 역대 16번째 스포츠 영웅 헌액이 된것인데요. 그가 현역시절 전세계를 대상으로 활약했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헌액식에 오른 그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습니다.

“저에게 과분한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스포츠계에는 기라성 같은 선후배들이 정말 많은데 제가 후보에 오른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제게 스포츠영웅이라는 칭호까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정말 가문의 영광이다”
“오늘 이 영광은 선배님들이 이끌어오신 그 길을 잘 따라온 덕분이다. 최근 3년간 힘든 길을 걸었다. 수술도 하고 몸과 마음이 지쳤는데, 오늘 이 스포츠영웅 선정은 제게 크나큰 선물이고, 다시 일어날 힘이 될 것같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대한민국 육상 스포츠의 큰 맥을 이은 이봉주, 현재도 회복을 위해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데 모쪼록 하루 빨리 회복해서 그의 순박한 웃음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