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출연료 1억원..” 30년간 악착같이 모아둔 돈을 전 남편에게 다 떼먹힌 가수 김연자에게 들려 온 안타까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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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악착같이 모아둔 돈을 전 남편에게 다 떼먹힌 가수 김연자에게 들려 온 안타까운 사연

역주행의 신화를 말하자면 이 분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바로 ‘아모르파티’ 열풍을 일으킨 가수 김연자입니다. 국내 연예인 중에서 가장 바쁜 연예인 중에 한명이기도 한데요.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의 아픈 과거가 들어나 대중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그녀는 과거 일본에서 활동을 하며 큰 인기를 얻고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고 일본인 남편을 만나게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3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이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혼과 동시에 기하급수적의 재산을 모두 잃게 되는데, 전 남편이 그녀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했고 벌어오는 모든 돈을 챙긴 것인데요. 현재는 과거 아픔을 딛고 재혼하여 새로운 시작을 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959년생으로 올해 나이 64세인 그녀는 가수이자 전설적인 뮤지션으로 이박사와 함께 1세대 트로트 한류를 이끈 아티스트입니다. 한국에서 배출해낸 명실상부한 일본 엔카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녀는 17살때 가수의 꿈을 품고 광주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지냈는데 그때 자신을 친딸처럼 예뻐해 줬던 수양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어린시절 광주에 따로 살던 아버지 또한 생활비를 보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였기에 온갖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어린 동생들과 사글세 단칸방에서 지내야 했는데요.

그때 곁에서 늘 가족처럼 챙겨줬던 분이 바로 옆집에 살던 수양 어머니였습니다. ‘너는 가수가 돼야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서울로 올라와 밤무대를 뛰기 시작했는데요. 평소 딸의 노래실력이 범창치않음을 알고있던 아버지는 항상 손님 앞에서 노래를 시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나이였던 그녀에게 ‘가수를 하라’며 서울로 보내버렸고 당시 너무 어렸기에 18살이라고 속이고 데뷔를 합니다.

하지만 오디션에 번번이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고 4년 동안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요. 그러던 와중 일본의 토리오 레코드사의 오디션에 합격한 그녀는 일본으로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됩니다.

당시 한국에 있어봐야 밤무대 외에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판단했기 때문인데 힘들게 일본 활동을 했지만 당시 소속사에서 3년 동안 히트곡을 내지도 못하고 월급만 나가는 가수라며 안타깝게도 해고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녀는 과거 ‘휴먼다큐 사람이좋다’에 출연해 과거에 대해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데뷔 이후 줄곧 학업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가장의 역할을 하며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 왔다고 하는데요.

“저희 집은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어요. 저는 어쨌든 공부를 못했죠. 그렇지만 동생들은 잘 되길 빌었어요.”라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으며 동생들에게 아빠 역할을 하며 교육도 다 시켜줬다고 합니다.

데뷔 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히트곡이 없어 한일 양국 어디에서도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1981년 ‘노래의 꽃다발’이라는 트로트 메들리 앨범을 발표했고 히트를 시키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는데요.

당시 이 음반은 약 360만장의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김연자는 1984년 ‘수은등’으로 또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데뷔 후 주로 정통 트로트를 불렀으나 트로트 장르에서 벗어난 노래들이 인기를 얻기도 했는데요.

그중 ‘씨름의 노래’는 민속 씨름대회에서 장사가 탄생했을 때 들려지는 노래로 선정되기도 했고 1986년 전설적인 작곡가인 길옥윤이 작곡한 서울 올림픽 찬가로 알려진 ‘아침에 나라에서’를 불러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일본어로 개사하여 히트를 시켰습니다.

이후 19살때 본격적으로 홀로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여러 앵카 곡들을 히트시키면서 일본에서도 대형 앵카 가수로 성장합니다. 2001년에는 북한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고 평양에서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2013년에는 ‘아모르파티’로 정통에서 벗어난 EDM과 트로트를 접목시킨 장르를 선보이며 4년만인 2017년의 재조명 받아 젊은 세대들에게 폭발적인 반응과 공감을 얻었습니다.

사실상 제2의 전성기를 맞은것인데 현재까지도 국내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상파 3사의 프로그램에 자주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녀는 일본에서 열리는 콘서트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자주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특히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극우 혐한 세력에게 위협과 핍박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니 당연하게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른 거예요. 아무 상관없었고 그게 싫으면 제 콘서트에 안 오면 되는거죠.”라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요.

1982년 23살의 나이에 18살 연상의 제일 교포와 결혼을 했지만 이후 2012년 30년 만에 이혼을 했는데 두 사람은 1977년 그녀가 일본으로 처음 진출했을 때 방송에 출연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됐습니다.

낯선 외국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것들이 어렵고 힘들때 전 남편이 다가와 한국어로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고 하는데요. 누군가와 한국말로 대화가 된다는 것만으로 굉장히 힘이 됐던 그녀의 전 남편 직업은 밴드 지휘자였습니다.

당시 전 남편에 대해 “남편과는 처음부터 끌렸어요. 첫 만남 장소에서 서로 같은 김씨성이지만 본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했을 정도였죠.”라고 첫눈에 반했던 당시를 고백했는데요.

그녀가 활동을 하는데 있어 큰 힘이 되어 주었고, 그녀 또한 의지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가게 되었죠. 하지만 결혼 30년만에 자녀도 없이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김연자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재산도 상당히 많이 축적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혼과 함께 이 모든 것이 날아가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과거 그녀가 직접 밝혀 알려지게 됐습니다.

“일본에서 하루에 1억원씩 벌 때도 있었는데 이혼 후 제 앞으로 재산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게 일본에서 빈털터리로 돌아왔죠. 사실 이혼을 결심한 것은 10년 전부터였어요. 재일 교포인 전 남편과 10년 전부터 갈등을 느꼈고 지난 2012년 3개월의 조정을 거쳐 5월 이혼을 하게 되었죠”

“남편에게 쉬는 날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행복한 비명이라고 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어요. 남편이 연예계에 있었기 때문에 더 편했고 믿었죠. 그래서 남편이니까 제 장래 설계도 해주겠지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남편에게 개런티가 얼마인지 물어본 적도 없고 은행에 가본 적도 없고 그냥 믿고 노래를 불렀죠. 그런데 문득 뒤를 돌아봤더니 제 앞으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위자료는 하나도 못 받았어요.”

“일본 활동 당시 1400억 원 이상 벌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 남편은 재판장에서 돈이 하나도 없다고 했죠. 결국 위자료 재산 분할 아무것도 안 해줬어요.”라고 털어놨습니다.

두 사람이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했지만 자식이 없는 이유도 남편이 필요 없다고 갖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데요.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녀가 결혼 전, 한국에 마련해 둔 작은 건물과 집이 있어서 재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혼 후 국내 복귀 과정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는데 귀국 후 달라진 국내 가요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했던 그녀가 ‘아모르파티’로 재개할 수 있었던 건 소속사 대표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녀는 한 방송을 통해 “새 사랑을 찾았어요. 좋은 사람이고 엄청나게 의지되고 믿음직한 사람이죠. 광주에서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노래 학원을 다녔는데 그때 함께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서로 불꽃이 튀었죠”라고 남다른 인연을 공개했는데요.

전 남편에게 추정 불가한 큰 돈을 빼앗겼던 아픔을 겪은 그녀가 한국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 힘을 내고 있습니다. 트로트계의 여왕으로 자리 잡은 그녀가 앞으로도 계속 승승장구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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