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보다 돈이 많을것이라는 소문이 들릴정도로 2000년대를 평정했던 발라드의 여왕 이수영 인기와 부, 명예를 모두 갖춘 여가수였습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빚더미에 앉아야 했고 최근에는 안타까운 가정사까지 고백하며 오열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습니다.

물론 이수영의 인성 논란도 있었지만 오늘은 살아남은 것 자체에 죄책감을 갖고 살았던 이수영의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1979년 서울 관악구에서 2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난 이수영은 분당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천대학교 여성교양학과를 중퇴했습니다.
이수영은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이런 재능을 살려 1999년 1집 앨범 ‘I Believe’로 가수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명시절 없이 이수영은 데뷔하자마자 큰 호응을 얻으며 인기를 끌었는데 2003년에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이효리를 꺾으며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대상 격인 최고 인기 가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에도 이수영은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상을 받으며 2연속 수상을 기록했는데 같은 해에 ‘휠릴리’로 골든디스크 대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이수영은 현재까지 10장의 정규 앨범 및 3장의 싱글을 발표했는데 흥행한 곡도 꽤 많습니다. 데뷔곡이었던 ‘I Believe’를 비롯해 ‘라라라’ ‘덩그러니’ ‘휠릴리’ ‘내 이름 부르지마’ 등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에 손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잘 나갔던 나머지 돈에 눈먼 소속사와 여러 번 갈등도 빚었는데 무려 두 소속사에서 이수영에게 고통을 줬습니다. 첫 소속사와의 문제 때문에 그녀는 절친한 친구인 이효리와도 멀어져야 했습니다.
소속사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이효리와 이수영을 의도적인 라이벌로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다가 사이가 멀어졌는데 거기에는 소속사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집니다.
근거로는 이효리가 과거 했던 발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전 소속사에서 수영이를 무척 엄하게 관리할 때였어요. 내가 매일 수영이를 데리고 놀러 갔거든요. 결국 소속사에서 몇 미터 이내에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어요.”

이수영의 소속사였던 당시 엔터테인먼트는 여론 몰이는 물론이고 직접적인 회방까지 놓으며 친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거기다가 인기 가수였던 이수영을 과하게 혹사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수영은 2005년 소속사를 떠나 리ㅇㅇ 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새로운 소속사는 이수영이 이적한 뒤 생일파티 겸 팬미팅, 팬캠프 행사를 여는 등 한층 더 팬 서비스를 강화시켰습니다.
그래서 팬들 대다수는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는 안정적인 소속사를 마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리ㅇㅇ 엔터테인먼트는 이수영과 법적 분쟁까지 불사했습니다.

이수영은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 소속사와의 계약금 지급 등의 문제로 서로 맞고소를 하며 2년 만에 결별했습니다. 리ㅇㅇ 엔터테인먼트는 당시 신생 회사였는데 그 때문에 노하우가 부족했는지 업무 처리에 미숙했습니다.
이수영에게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계약금을 요구하는 이수영의 요구에 이수영의 매니저팀을 전원 해고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한 2006년 하반기 전국투어 콘서트 일정에는 이수영의 동의 없이 일방적인 체결로 불성실하게 계약을 이행해 그녀를 괴롭게 했고 그때문에 이수영은 또다시 소속사를 옮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닐 만큼 이수영의 연예계 생활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녀를 괴롭혔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방송에서 그녀에게 ‘발라드 여왕 아니냐. 바닥에 있는 돈을 다 쓸어모았고 한국은행보다 돈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는 말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차곡차곡 모았다면 빌딩도 하나 있을 텐데 다 사기당했어요. 30살때 사기를 세번 당했어요. 20대에 번 돈을 다 잃었고 빚까지 졌어요.”
그녀가 잃은 것은 돈뿐이 아니었습니다. 이수영은 사기 당한 이후 마음의 병까지 얻었습니다.

“사기 이후 우울 공황 불면 강박이 왔어요. 그때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공황 발작이 일어나면 너무 괴로워요.”
크게 고통을 받은 이후 그녀는 무엇에도 투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이 그녀의 곁에서 많은 부분을 도와준다고 전해집니다.
이수영의 남편은 대기업 광고회사에 다니는 인물로 둘은 소개팅에서 만났습니다.두 사람은 연애 1년 만에 결혼했는데 남편에 대해 이수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빚 때문에 결혼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결혼해 준 남편에게 고마워요. 남편을 만나 처음으로 내가 정말 같이 있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보면 볼수록 감동하게 하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런 남편이 가출을 감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혼 후 이수영은 무려 10억 대의 대출 사기를 당했는데 충격을 받은 남편은 5일 가량이나 잠적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수영은 운전하던 차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할까라는 생각마저 했는데 박경림이 앞장서서 은행을 찾아가 문제 해결에 힘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5일 후 남편도 연락와서 ‘같이 이겨내보자’는 말을 했는데 몇 년에 걸쳐 대출 사기금은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수영이 지금의 가족에게 유달리 더 깊은 애정을 보이는 데는 힘들었던 그녀의 가정사가 배경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수영은 어릴 때부터 소녀 가장 노릇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였는 때 아버지는 이수영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어머니 역시 20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외에 동생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는데 그녀가 가족 얘기를 극도로 꺼리기 때문입니다. 데뷔 초반에 이수영은 소녀가장 가수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사연팔이를 하며 동정심을 형성한다는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본인이 직접 밝힌 것이 아니라 지인들의 증언에 소속사의 여론 몰이가 더해진 것이고 실제로 이수영은 데뷔 후 한참이나 가정사에 관한 얘기를 함구했습니다.

이수영은 불우한 가정 속에 자랐는데 부모님이 사이가 매우 나빴습니다. 그녀의 모친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나 아버지는 그 종교를 믿지 않아 갈등을 빚었습니다.
게다가 이수영의 아버지는 결혼 생활 중 외도를 저질러 이 때문에 부부 싸움이 잦았다고 전해집니다. 심지어 부친은 주먹까지 휘둘렀는데 이수영의 어머니는 그때문에 고된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한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 후 급하게 재혼을 했지만 이번 상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나쁜 계부의 정석이었는데 아이들을 심하게 학대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수영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사건이 있어요. 계부가 공부시킨다고 전지에 영어를 쓰고 문법을 알려줬어요. 나는 첫째고 공부도 잘해서 견뎠지만 막내는 나이가 어려서 잘 못 따라왔어요.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계부가 남동생을 발로 밟고 있더라고요.”
그때 이수영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를 저지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울다가 쓰러졌습니다. 이렇게 매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계부는 이수영의 모친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마자 아이들을 버렸고 이수영은 두 동생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습니다. 단 한순간도 아버지로서 자식을 품지 않았던 그의 행동의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이수영은 인생 최고의 공포 순간에 대해 부모님께서 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라고 꼽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오은영 박사는 이수영을 전쟁고아에 비유했습니다.
“마치 전쟁고아처럼 살아남은 것 자체가 죄책감이 돼버린 삶이었던 것 같아요.”
이수영은 너무나 힘든 일들을 겪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살 길은 가수가 되는 것뿐이라며 절치부심해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이수영이 대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데 그녀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며 그녀의 앞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