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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을 위한 작은 물결은..’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인 독립운동가들이 대한축구협회를 만든 진짜 이유에 모두 눈물만 흘렸다

축구협회를 창설한 초대 회장 박승빈 선생님을 아시는분들은 많이 없는데요. 대부분이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오고 이 땅에 계급이 철폐되던 시기, 우리 말의 이름 뒤에 붙는 호칭 ‘xxㅆ씨’, 그리고 상대를 부르는 호칭 ‘당신’이라는 표현의 사용을 처음 주장한 인물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바로 국어학자이자 검사이자 변호사 그리고 조선축구협회를 창설하신 박승빈 선생님인데요. 계급이 없어지고 한국인들 모두가 상호를 존중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박승빈 선생님의 주장대로 현대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누구나 ‘씨’로 호칭하고 네가 아닌 ‘당신’이란 표현이 쓰입니다.

그가 바란 첫째 가치는 계급이 없는 사회, 평등한 세상, 누가 누구를 하대하는 언어가 아니라 나이, 계급, 직업과 상관없이 존중하는 국어였습니다.

조선어의 기본은 ‘계급 사회’에서 왔고 그가 생각하는 신한국어의 목표는 보편적이고 평등한 호칭을 통해 사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었는데요.

‘당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전 한국어에는 놀랍게도 보편적인 2인칭 대명사가 없었고, 이는 계급 의식에서 비롯된 언어의 특징이었습니다. 언어 평등을 솔선수범하기 위해 박승빈 선생님은 손자에게도 경어를 쓰신 인물입니다.

그는 단순한 국어 학자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검사로 재직하던 무렵, 조선과 일본의 한일 합방이 이뤄지자 일제의 관료가 될 수 없다는 애국심으로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의 길을 걷고 동포들의 변호를 맡으며 조선변호사 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합니다.

또한 계명구락부를 창립해 전통적 혼례가 아닌 작은 결혼식을 장려한 신생활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그의 직업을 통틀어 단 한 줄을 남기려면 박승빈 선생님은 ‘계몽 운동가’였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조선이 대한민국이 되던 시기, 과거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역사의 중앙에서 민중들 또한 조선인이 아닌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계몽시키기 위해 노력하신 분입니다.

이러한 박승빈 선생님은 어떠한 이유로 축구 협회를 창설하게 됐을까요? 바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꿈도 희망도 없이 오직 의식주를 누리기 위해 살아가는 민중들을 위해 오락을 제공하고 싶었던 그의 선택은 축구였습니다.

축구 협회의 2대 회장은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여운형 선생님입니다.

1919년 11월 27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연설 중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우리가 건설하려는 나라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인민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유명한 어록을 남겼습니다.

“혁명가는 침상에서 돌아가는 법이 없다. 나도 서울 한복판에서 죽을 것이다.”

평생 투쟁하셨던 여운형 선생님은 기어이 암살당하셨고 그가 피격 직후 내뱉은 유언은 “조국.. 조선..”이었습니다. 여운형 선생님이 축구협회 2대 회장에 오른 이유 또한 동포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3대 축구협회장은 일본에 의해 친일파 고원훈에게 돌아갑니다. 일본명 다카모토 쿤은 조선 최고의 부자 중 한명이었고 일제가 전쟁에 사용할 비행기를 생산하기 위해 조선 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 민족의 원수입니다.

이후 1945년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남을 광복이 도래합니다. 우리는 축구 협회 또한 되찾았고 4대 회장에는 한국인 최초의 하버드 대학 졸업생 하경덕 씨가 취임합니다. 그 또한 광복 이후 코리아 타임즈 창간, 서울신문사 사장 등을 역임하는 사회운동가입니다.

이후 5대 회장도 모두가 아시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신익희 의장님입니다.

“나라는 완전히 독립되어야 하고, 민족은 철저히 해방되어야 하며, 사회는 반드시 평등하여야 한다.”

그가 축구 협회장이 된 이유 역시 사회의 평등 그리고 민족의 즐거움을 위해 부자도 가난한 자도 공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축구를 매개체로 생각하셨습니다.

이 땅에 축구가 소개되고 발전한 유일한 이유는 놀랍게도 애국과 오직 국민이었습니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애국심을 가지고 출전하지만 대한축구협회만큼 철저하게 독립과 애국을 위해 창설되고 발전된 협회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습니다.

역대 축구 협회장들의 노력에 국민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시간이 흐르고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던 무렵 축구는 국민 모두가 즐기는 오락이 되었습니다.

대표팀은 역대 최초의 한일전과 월드컵 예선 출전을 강력히 희망했으나, 협회에는 선수들을 일본에 보낼 자금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이번에는 민중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인 한국 사람들은 기부를 통해 대표팀에 도쿄인 경비를 마련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민중에게 축구를 전파하셨고, 민중은 축구 선수들에게 피 같은 돈을 내어주었으며 대표팀은 “일본에 지면 대한해협에 빠져 죽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떠난 대표팀은 기어이 승리를 거두고 역대 최초의 월드컵 본선행을 결정지었습니다. 역대 회장님들이 땅에 축구를 선사한 유일한 이유가 바로 그 경기 심리에 감격하고 평등하게 태극기 아래에 울고 웃은 해방된 한국인들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0년의 시간이 흐르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은 안면이 골절된 상황에서 말합니다.

“단 1%의 가능성만 있다면, 그 가능성을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앞만 보며 달려가겠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월드컵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현재의 선수들은 대한축구협회의 창설 목적과 초대 회장님들의 애국 활동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손흥민을 포함한 많은 대표 선수들은 처음 축구협회를 만든 그 분들처럼 여전히 애국을 말하고 있고 여전히 우리나라를 외치며 태극기를 달고 승리하고 애절한 눈물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생의 절반을 해외에서 성장한 이강인 선수가 말합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서 더 좋은 결과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축구협회를 창설하신 박승빈 선생님, 그가 이 땅에 소개한 가장 큰 영광에는 국어와 계몽 뿐 아니라 축구는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영광을 이어온 사람들이 바로 그 축구를 인성으로 행한 선수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국민들입니다.

2023년 대한축구협회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축구는 모두의 것입니다. 다만 그 권한을 우리는 축구 협회에 위임하였습니다. 대표팀 경기의 수익 스폰서들이 협회와 계약하고 자금을 대는 이유는 축구를 좋아하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국민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땅의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이강인 같은 선수들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축구를 소개하시고 보급하신 독립운동가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축구를 통해 세계에서 태극기와 함께 뛰고 있는 선수들 감사합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통해 당신의 꿈에 조금은 가까워졌음을 느끼고 계시리라 감히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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