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트 가수 박상철이 드라마 <부부의 세계>만큼 충격적인 가정사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불륜을 인정했을뿐 아니라 이혼 소송에 휘말려 실망스러운 사생활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한때 트로트 황태자로 불리며 산골 소년에서 노숙자를 거쳐 대형가수로 급부상하며 만인의 사랑을 받았던 그에게 무슨일이 생긴걸까요.

박상철의 <무조건>노래는 전 국민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일본에서도 리메이크하고 선거송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곡이기도 합니다.
2020년 8월 4일 디스패치에서 박상철의 가정사와 관련된 논란을 정리한 기사가 나왔고 다시 mbc <실화탐사대>는 2020년 8월 29일 방영분에서 이 논란을 다루었는데요.
박상철의 가정사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전처 A씨와 결혼을 유지하며 동시에 상간녀 B씨를 만났고 거기에 혼외자까지 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박상철은 A씨와 이혼했고 B씨와 재혼 후 다시 B씨와 이혼 소송을 벌이며 파국으로 향하는데 불륜, 이혼과 재혼 그리고 다시 이혼 소송으로 얼룩졌고 심지어 폭행에 관한 형사 고소도 반복됐습니다.

양측 주장은 극명하게 엇갈렸고 경찰은 박상철의 손을 들어줬다고 합니다. 박상철은 지난 1992년 6월 첫번째 부인 A씨와 결혼했습니다.
슬하에 세명의 자녀를 뒀고 둘은 강원도의 미용실을 차렸는데 아내 A씨가 주로 운영했고 대신 박상철은 트로트 가수를 꿈꿨습니다. 박상철은 10년 이상을 무명으로 지내다 2002년 <자옥아>가 터졌고 <무조건> <황진이>로 연타석 홈런을 때렸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 황태자라는 별명이 붙었고 트로트 대세가 되지만 결혼은 위기를 맞았는데 2007년 그가 외도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3세 연하의 당시 27세 B씨를 만난 것인데 한마디로 불륜이었습니다.

박상철은 2010년 두 집 살림을 차렸고 2011년에는 C양까지 낳았습니다. 2014년 박상철은 전처 A씨와 이혼하는데 혼인 파탄의 책임을 졌고 동시에 B씨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상간녀 B씨를 아내로 맞이하고 혼인신고를 하고 C양을 호적에 올립니다. 박상철은 자신의 이혼과 재혼을 철저히 숨겼다고 합니다. 평범한 가장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A씨와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B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것이죠.
현재는 이혼한 B씨가 말하길 불륜으로 시작한 건 자신의 잘못이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박상철이 A씨와의 관계를 쇼인도라고 속였고 곧 이혼할 거라는 말을 믿고 만났다고 합니다.
B씨는 박상철이 2013년 보낸 문자들을 보여줬는데 실제로 박상철은 당시 B씨가 결별을 통보하자 ‘미치도록 사랑하니 돌아오라’ ‘너무 그립다’ 등 문자들을 보낸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상철은 B씨와의 관계를 묻자 즉답을 피했고 ‘사생활이다. 내가 밝힐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다만 계속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남겼는데 ‘변명의 여지 없이 도덕적으로 자신의 잘못이고 어쨌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딸을 위해 혼인 신고도 했다’고 말합니다.
박상철은 B씨와의 재혼 후 다시 전쟁을 벌였는데 혼인신고 4개월 만에 이혼 소장을 접수했고 그 뒤로 취하와 소송을 반복했습니다. 형사고소로 다툼도 벌였는데 둘은 폭행, 폭언, 협박 등으로 맞섰습니다.
B씨는 결혼 생활 내내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는데요. ‘박상철은 예고도 없이 욕을 했다. 다짜고짜 때렸다. 온몸에 상처도 입었다.’며 상해 진단서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박상철은 허위 고소라고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B씨의 상처는 모르겠다. 자해에 가깝다면서 오히려 B씨가 자신에게 욕설을 했고 손과 발로 때렸다고 부인을 합니다. 이 주장에 힘이 싣렸는지 법원은 박상철의 주장에 손을 들어줍니다.
2019년 7월 박상철의 폭행 혐의에 관한 법원 판결문에서 B씨는 박상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진술을 거듭할수록 폭행 정도를 키워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B씨가 의도치 않은 신체적 접촉을 폭행이라 신고한 후 내용을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에대해 B씨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입장인데 상해 진단서도 있고 112로 신고한 목격자도 있다며 판결에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반면 박상철은 B씨를 협박으로 고소한 적이 있는데 욕설 및 협박 문자를 20여 건 보냈다는 것이였습니다. B씨는 이와 관련해 200만 원의 벌금형 처분을 받았는데 B씨는 해명을 하며 ‘욕설을 보낸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문자로 욕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면서 너무 힘들고 괴롭고 분하고 억울해서 화풀이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상철과 B씨의 골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깊어졌고 B씨는 박상철의 폭언과 폭행을 이유로 다시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박상철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재차 강조하고 항변했는데요.
‘B씨의 목적은 돈이다. 돈이 필요하면 트집을 잡는다. B씨의 신고는 악의적이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것과 관련해서인지 그는 <사랑의 콜센타> 녹화도 불참을 선언했으며 <트롯 전국 체전>도 출연을 안 하기로 하는 등 방송 활동도 잠정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알고보면 박상철의 인생 스토리는 정말 대단합니다. 가수가 되기 위한 상경과 실패 후 귀향, 그리고 다시 상경을 반복하여 스타로 성공한 인간 승리 수준의 케이스로 힘든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고교 졸업 직후 19살 어린 나이의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상경한 후 미장이 일과 공장일 등을 하며 돈을 모았는데 충무로에서 만난 작곡가에게 1천만원을 주면 정식 가수로 데뷔시켜주겠다는 유혹으로 사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사기를 당해 빈곤한 생활이 이어서 충무로지역 내에 경비가 허술했던 건물이나 서울역, 구로역 같은 지하철역들에서 노숙을 하며 극단적 충동에 시달리며 살다가 우연히 만난 한 중년 노숙자에 “나는 사업이 망해 빚도 있고 늙어 다시 돌아갈 수 없으나 자네가 빚이 있나 뭐가 있나 자네는 젊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는 말에 감화되어 다시 새롭게 도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고향 삼척시로 귀향해 돈을 벌어 가수의 꿈에 재도전하겠다는 목적으로 미용일을 배워 미용사가 되어 미용실을 열어 돈을 벌면서 꿈을 꾸던 중 1993년 강원도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하여 가수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라는 노래로 전체 1등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다시 가수의 길로 들어설 동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당시 미용실까지 유명해지면서 그때부터 ‘노래하는 미용사’라는 콘셉트을 밀기 위해서 일부러 머리를 길게 길러 장발 스타일을 유지하기 시작하였는데 정식 음반으로 데뷔를 한 30대 중반까지 장발을 유지했습니다.
그 후에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난 인맥으로 기획사를 만나게 되어 2000년 1집 부메랑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좋지 않은 경제사정으로 금호동 옥탑방에 월세를 살며 재연배우와 리포터 일을 부업으로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당시 <서프라이즈> 재연배우였을 때 장윤정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연기한 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러다가 2001년에 발표한 <자옥아>가 2003년부터 히트를 치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무조건>의 대히트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박상철은 <전국노래자랑>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스타 중 한명으로 불륜과 같은 좋지 않은 사생활이 알려져 도덕성이 좋지 못한 연예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상황입니다.
하지만 2022년 6월 13일 <가요무대>에 복귀한 것을 시작으로 <가요무대>에 종종 출연하고 있고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홍천군편에도 초대가수 중 하나로 출연하게 되면서 지상파를 포함한 tv방송과 행사에 복귀했습니다.

이런 박상철에 대해서 ‘뻔뻔하다’며 비난하는 반응도 있는 반면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이유 없이 꽃길만 걷기를 바란다’며 위로해주는 반응도 있는 등 반응은 대체적으로 제각각입니다. 박상철이 대중에게 용서를 받고 다시 트로트 황태자로 재개할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