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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하게 화장실에 숨어서 울어야했던..’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엘레베이터 안에서 목 졸림을 당했던 여배우의 사연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한 이유 지금 확인해보세요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까지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배종옥은 대한민국의 대표 연기파 배우입니다.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의 배종옥이 그와 같은 삶을 살았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실제 배종옥의 인생은 눈으로 보이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당당한 이미지와 달리 매일같이 화장실에 숨어 울었다는 배종옥은 1964년생으로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를 출산할 때 어머니의 나이가 42살로 당시 기준 매우 노산에다 이미 자녀가 다섯이나 있었던 어머니는 배종옥을 낳지 않으려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습니다.

세 번이나 침대에 올라갔고 아이를 지우려고 의사까지 찾아갔지만 의사는 그럴 수 없다고 만류했고 그렇게 배종옥은 무사히 세상의 빛을 봤습니다.

배종옥의 시련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홀로 6남매를 키웠는데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아이들을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태도는 배종옥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집니다. 훗날 배종욱은 “내 자의식이 강한 이유는 모두 어머니의 씩씩한 모습이 전해진 덕분”이라고 밝혔습니다.

배종옥은 강한 역할을 많이 맡기도 하지만 평소 모습에서도 직설적인 화법과 강인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릴 때에는 지금의 모습과 달랐다고 전해집니다.

배종욱은 어린 시절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연극영화과에 진학을 마음 먹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만류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연극영화과는 활발한 아이가 진학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고 그녀의 담임은 원서까지 써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집안의 반대에도 부딪혔는데 특히 큰오빠가 ‘사범대가서 선생님이나 하다 시집이나 잘가지 무슨 연극을 하느냐’라며 극구 반대했습니다.

이를 잠자코 듣고 있던 어머니는 “내 딸은 내가 알아서 키울 테니 넌 내 딸이나 잘 키워라”며 배종욱의 편을 들어줬고 이런 어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배종옥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85년 KBS 특채로 데뷔하며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배종옥 하면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손꼽힙니다. 선배 박근형이 그녀의 연기력을 두고 한 발언도 유명합니다.

박근형은 99년 당시 중앙대 부총장 바로 앞에서 “배종옥 이후로는 중앙대 연극학과의 배우라고 할 만한 배우가 안 나온다”며 세태를 꼬집음과 동시에 후배를 추어올린 적이 있습니다.

대선배가 인정할 만큼 배종옥의 연기력은 정평이나 있습니다. 그리고 배종옥은 유명 작가 사단에까지 이름을 올렸습니다.
 
<목욕탕집 남자들> <내 남자의 여자> 등 다수의 흥행작을 가진 김수현 작가는 물론 <거짓말> <꽃보다 아름다워> <우리들의 블루스> 등을 쓴 노희경 작가 사단에도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중 노희경 작가와 관계가 특별하다고 알려졌습니다. 사실 배종옥과 노희경의 첫 만남은 꽤 안 좋았다고 전해지는데 노희경은 드라마 <거짓말>을 촬영하던 때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던 배종옥의 목을 조르고 손목을 물어버리는 기행을 보였습니다.

배종욱은 한 방송에서 사건의 전말에 대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한창 연기를 할 때 거짓말이란 드라마의 막바지로 캐스팅됐어요. 굉장히 하고 싶어 했던 작품이었지만 나에겐 시간이라는 게 필요했어요.”

“하지만 작가는 나의 모든 것이 못마땅했고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내려오던 중 순식간에 내 목을 조르면서 ‘연기 좀 잘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친분도 없던 작가가 갑작스레 목을 조르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더 충격적인 것은 배종옥과 노희경과의 악연은 이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후 윤여정 선배님 노희경 작가와 커피를 마신 적이 있었어요. 그날 노희경 작가가 잘난 척을 많이 하길래 ‘잘난체를 하시는 스타일이군요’라고 쏘아붙였어요.”

“노작가는 그때 내 손목을 물었어요. 나는 노작가에게 ‘하긴 그러니깐 글을 잘 쓰시는군요’라고 말했어요.” 두 차례의 공격에 배종옥은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연기에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드라마가 5, 6회 정도 진행됐을 때 노희경은 배종옥에 대한 생각을 바꿨고 결국 그땐 미안했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절친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제작진의 걱정을 연기 하나로 잠재운 배종옥이지만 처음부터 그녀가 연기를 잘 한 것은 아닙니다.

배종옥은 사실 전형적인 노력파 배우입니다. 데뷔 초 배종옥은 수차례 연기력에 대해 악평을 들었는데 KBS 드라마 <해돋는언덕>에서 처음으로 브라운관 연기를 시도할 때는 PD에게 ‘연기를 이따위로 밖에 못하느냐’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들었습니다.

또한 선배들은 그녀를 따로 불러 질책했습니다. 그 때문에 매일같이 KBS 화장실에 숨어 눈물을 흘렸고 연기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훗날 본인이 직접 밝히기를 ‘사실 당시의 문제는 연기가 아닌 발성 문제였다’고 합니다. 특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차갑고 딱딱하게 들렸던 탓이 컸던 겁니다.

이때만 해도 다른 여배우들의 목소리는 천편 일률적으로 나긋나긋하며 부드러웠고 배종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그에 잘 어우러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혹평에도 배종옥은 청순하면서도 귀여운 외모로 주목받았고 배종옥 역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노력을 하며 연기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90년대 초반부터는 주연급으로 성장했고 더불어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 배종옥은 결혼을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1993년 두 살 연상의 파일럿과 결혼식을 올리고 딸을 낳았지만 1년 6개월 만에 파경을 맞이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라고 알려려있지만 배종욱은 훗날 ‘결혼이라는 것이 본인에게 꽤 버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좋아요.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답답해요. 심지어 꿈에서 결혼하는 꿈을 꿀 때가 있는데 꿈에서조차 기분이 좋지 않아요.”

“꿈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결혼을 또 왜 했을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혼한 사실이 꿈에서 있었던 것을 알아챌 때면 그제야 안심이 돼요.”

배종욱은 1년 6개월의 결혼 생활 동안 자신이 결혼이라는 제도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결혼을 함으로써 사랑하는 딸을 얻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엄마가 된 일이다. 딸이 내 옆에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만약 딸이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이혼 직후 3대가 같이 살았던 때를 꼽았습니다. “내가 1년여의 짧은 결혼 생활을 끝낸 뒤 딸과 함께 돌아간 곳이 엄마의 품이었는데 이후 엄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녀 삼대가 함께 살았던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내가 재혼을 하지 않았던 건 내 삶이 그 자체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을 들은 네티즌들은 ‘역시 딸이 최고지’ ‘배종옥씨 어머니도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을 거예요.’ ‘아픈 시간을 3대가 똘똘 뭉쳐 이겨냈나 보네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기를’이라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매일을 눈물로 지새울 만큼 힘든 시기를 겪어온 배종옥, 그래도 그런 아픈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배종옥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데뷔한 지 40년이 다 돼가는 배종옥은 브라운관과 스크린 그리고 연극 무대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 중입니다. 10월에는 연극 <러브레터>의 출연까지 확정되었습니다.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들으면서도 그에 안주하지 않고 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배종욱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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