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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대세 여배우 잘지내나 싶었는데 임신, 출산 이후 성형으로 결국.. 안타까움만 쏟아지는 이유 지금 확인해보세요

kbs 일일극 ‘금이야 옥이야’에 출연한 배우 송채환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녀는 9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며 ‘금이야 옥이야’에서 열연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대요.

그런 모습 뒤에 진짜 인간 송채환의 삶은 그야말로 너무나 충격적일 정도로 힘겨웠던 역경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녀는 버스 운전수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는데 어머니는 배를 가르는 큰 수술만 네 번을 한 끝에 병원에서 사망 선고까지 받았을 정도로 건강이 너무나 나쁘셨고

아버지마저 운전 중 사고로 하반신에 큰 화상을 입으며 집안 사정이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모든 일들은 송채환이 아직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벌어졌던 일이라고 하는데요.

송채환은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꾸 앓으셨던 데다가 병원에서조차 더는 치료가 힘들고 무의미하다며 소위 사망 선고를 내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어머니가 40년간 배를 가르는 큰 수술만 무려 4번을 했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으셨던 바람에 송채환의 할머니는 오죽했으면 새 엄마를 구하러 다니기까지 하셨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송채환은 어머니를 대신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살림을 도맡았을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는데요. 아직 10살밖에 안 된 아이가 아픈 엄마의 곁을 지키며 청소와 빨래, 시장 보는 일까지 해냈다고 하니 여간 똑부러지는 아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송채환의 어머니는 그녀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무렵부터는 아예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버스 기사로 일하시던 아버지마저 버스가 한강물에 빠지는 사고로 하반신에 큰 화상을 입으시며 하반신 이식 수술과 머리 이식 수술을 하게 되셨고 집안 사정은 더욱 처참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작고 어렸던 송채환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묵묵히 어머니와 아버지를 돌보며 집안일을 하는 것밖에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송채환은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부모님께 더 해드릴 것이 없을까 항상 고민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착한 마음씨와 기특함이 타고났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시련 속에 좌절할 법도 했지만 누워계신 어머니께 제발 일어나라며 눈물로 호소하며 어머니 곁을 지켰고

그 작은 여자 아이는 또 어디서 들었는지 굿하는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써와 집안 곳곳에 붙이며 엄마를 살려달라고 빌기까지 했다는데요. 그런 그녀를 본 어머니는 의지가 생기신 건지 힘들게 일어나 집 안 곳곳에 있던 부적을 떼어버리시더니 어린 송채환을 데리고 교회로 향하셨다고 합니다.

비록 본인의 몸이 힘들고 제대로 앉지는 못할지라도 어린 딸의 간절한 그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렇게 교회에 나가게 된 송채환은 아픈 어머니를 따라 무작정 교회에서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녀는 아픈 어머니 곁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새벽 기도는 물론이고 금요일 철회, 예배까지 빼놓지 않고 나가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는데요. 그런 간절하고 절박했던 송채환의 기도가 하느님께 전달이 되었던 것일까요.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딸의 간절함과 정성어린 보살핌 덕에 상태가 점점 호전되셨고 이후 어느덧 건강을 회복하는 단계까지 이르시게 됩니다.

그렇게 삶을 되찾은 송채환의 어머니는 나중에 송채환과 함께 아침 방송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효녀 딸을 자랑할 정도가 되었고 송채환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2 오디션에서 231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으로 발탁이 되더니, 이후 다양한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며 톱스타 반열에 올라서게 되는데요.

톱스타가 된 이후에도 그녀는 화려한 역할보다는 힘겹게 사는 서민 역할을 주로 연기했는데 그녀의 출세작인 ‘첫사랑’의 푼수 역할이나 ‘옥이 이모’의 작부, 장군의 아들의 기생 역할 모두 상처받고 소외된 변두리 인생이었고

어릴 적부터 화려하지 않은 삶을 살아서 그런지 그녀는 옆집 아줌마, 뒷집 며느리 같은 느낌을 주고 싶으며 우아하고 지적인 체 하는 연기는 한마디로 닭살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기가 절정을 달리고 있을 무렵, 송채환은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50여 명의 하객만을 모시고 작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요. 당시 톱스타인 그녀가 들꽃으로 만든 수수한 화관을 쓰고 그의 남편은 맞지도 않는 남의 양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더욱 놀랐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녀는 한 언론사와 여성가족부가 전개하고 있었던 천 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에 참여한 것이라고 밝히며 ‘그때 그렇게 소박하게 결혼했던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작은 결혼의 의미를 가르치겠다’라며 크게 만족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송채환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소박하면서도 소탈한 삶에 더 의미를 두며 살았고 어릴 때부터 작은 것에 감사하며 톱스타가 된 후에도 그 마음을 잃지 않고 행복의 진실한 의미를 아는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인데요.

심지어 그녀는 1남1녀의 아이들을 낳을 때에도 모두 수중분만으로 낳았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삶을 추구했는데 이런 그녀의 매력이 알려지면서 방송가에서는 송채환을 섭외하려는 곳이 점점 많아졌고 다수의 cf 출연에 과거 인기 프로였던 sbs 행복 찾기의 mc로도 활약했으며

라디오 dj와 음반 취입에 부천에서 이화면옥이라는 식당까지 경영해 그야말로 팔방미인으로 바쁘게 뛰어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쁘게 살던 그녀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은 시련이 찾아오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성형 부작용으로 10여 년을 고생하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던 송채환이 무슨 성형이 필요했을까?라고 의아하기도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간 사우나에서 이마를 봉긋하게 해주겠다라는 아주머니의 권유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시술을 받은 결과,

그 후 시술 부위의 피부가 흘러내리듯 무너지는 바람에 다른 부위의 얼굴까지 망가지게 된 것이었는데요. 톱스타 여배우가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것은 아마도 인생 자체가 망가지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이로 인해 송채환은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고

일도 점점 끊기게 되면서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결국 방황 끝에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대추나무사랑 걸렸네’에 출연 중에 두 아이를 출산하면서도 하차를 하지 않았고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 갓난 아기를 촬영장까지 데리고 나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정도로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했는대요.

하지만 드라마에서 끝내 하차를 선택하, 이후 상실감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는데요. 첫째를 낳고도 7일 만에 일했고, 둘째를 낳은 뒤에도 3일 만에 드라마 촬영장에 나갔건만 그렇게 쉴 새 없이 일하던 송채환은 결국 우울증 때문에 오랜 기간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까지 복용을 했고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오랫동안 썼던 연락처도 바꿨을 정도로 한순간 모든 걸 놔버리고 꼭꼭 숨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던 송채환은 종교의 의지에 더 절실하게 기도하기 시작했고 가족들 또한 그녀를 응원하고 함께 아파하며 기도를 해주게 되는데요.

모두의 간절한 마음이 모인 것일까요? 이후 송채환의 상태는 다행히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3년 만에 라디오로 복귀해 신호탄을 쏘아올리며 성공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그녀는 가족의 지지와 사랑으로 슬럼프를 극복했고 좀 더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다시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으며 대중 앞에 나서게 되는데요. 다시 달리기 시작한 그녀는 이후 사업가로서도 도전장을 내밀게 되는데 바로 골프, 사교, 클럽, 럭셔리 201의 공동창업자로 변신을 한 것입니다.

이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송채환 토속항아리 김치까지 출시하며 다시 연기뿐만 아니라 사업까지 다방면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일에 대한 열망을 놓을 수 없었기에 연기와 사업을 병행했고 최근에는 홈쇼핑 방송에까지 출연하며 과거 팔방미인으로 활약했던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는데요.

송채환은 한 화장품 판매 방송에서는 여배우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당당히 생얼을 공개하기도 해 동안 미모와 고운 피부를 뽐내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가정에 소홀해질 법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엄마와 딸 노릇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요.

그녀의 어머니는 고령이 되시면서 골다공증으로 기침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지셨고 또 한번은 잠결에 털썩 주저앉다가 척추뼈가 부러졌을 정도로 몸이 약하셔서 나중에는 우울증까지 오셨는데 원래 여의도에 살던 송채환은 결국 어머니를 위해 파주에 전원주택을 지어 부모님과 온 가족을 데리고 함께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1~2년밖에 못 산다고 했지만 그 집에 온 뒤 10년이 넘도록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다면서 그때는 모든 이유가 부모님이었고 부모님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건강해지셔서 감사하다며 참된 효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송채환은 흙과 함께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에 단박에 친환경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했다며 우울증을 앓았던 어머니를 위해 탁 트인 느낌으로 거실을 꾸몄고 집 안 곳곳에는 포켓볼을 칠 수 있는 당구대와 노래방 기계,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된 작은 극장과 드럼 등 여가 시설의 아들과 딸을 위한 독서 공간까지 완벽하게 구별해 가족에 대한 그녀의 살뜰한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가 있었는데요.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딛고 연기자로 성공해 부모님께 이렇게 크게 효도를 하고 가족을 한결같이 아끼며 사랑하고 보살펴주라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배우 송채환.

최근 오랜 시간 드라마에서 볼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9년 만에 ‘금이야 옥이야’에서 열연하며 다시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던 그녀를 앞으로는 브라운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녀의 인생에 늘 행복한 일들만 펼쳐지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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