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었구나..” 수백억의 꿈을 뒤로한채 45억을 잃고만 채시라부부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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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故 최진실씨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녀를 능가할 정도에 포스와 인기를 누린 여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배우 채시라였습니다.

그렇게 1990년대 중반에 채시라는 평생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연기 대상을 20대 시절에만 두 번이나 연달아서 수상하며 역대급 스타성이라는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심지어 이때는 그녀가 모델로 출연한 화장품이 채시라가 모델이 되자마자 업계 2위까지 매출을 올릴 정도로 그야말로 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였는데요.

이처럼 여배우로서의 채시라는 그야말로 최고의 위치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사는 듯해 보였지만 화려한 삶 뒤에 감춰진 진짜 인간 채시라의 삶은 배우로서의 삶과 달리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한때 예비 시댁으로부터 검소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감정 싸움을 하다가 불쑥 집안의 내력을 알아야겠다며 집안의 족보를 원해야 했고 또한 지금의 남편이 성대에 마비가 와 더이상 가수 활동을 못 하게 되자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수백억의 돈방석에 앉을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개인 돈만 45억을 날려버리고 현재 초라하고 불안한 상태라고 말하는 채시라, 그녀의 최근 근황과 더불어 가슴 아픈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1968년 채시라가 태어나던 바로 그 해 달에 간 아폴로 우주선 비행사 중에 ‘윌터 쉬라’란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첫 아기를 얻은 기쁨에 가득 차 있던 아버지는 좀더 예쁘고 특이하고 잊혀지지 않는 이름을 찾던 중 쉬라라는 그 우주 비행사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그녀의 이름을 채시라라고 짓게 됩니다.

한편 어린 시절 성장 속도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굉장히 빠른 편이었던 그녀는 10개월 무렵부터 혼자 걸었고 그러자 동네 이웃집 아줌마들이 ‘시라야, 너는 니 돌떡도 니가 직접 돌릴 수 있겠다’면서 우스게 소리들을 했었는데 그런데 실제로 그녀는 돌날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으면서 집집마다 직접 돌떡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이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줄곧 학급 친구들 가운데 가장 큰 키를 기록해 반 아이들이 운동장에 쭉 늘어서면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얹어 놓은 듯 했는데 당시 어린 채시라는 남자 애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키 작은 애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며 만약 본인도 키가 작았다면 그 속에 폭 파묻혀 남들 눈에도 안띄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린다 카터가 주연한 외화 <원더우먼>이 한창 장안의 화제였는데 유난히 키가 컸던 그녀는 자연스레 별명이 원더우먼이 되었는데 우스겟소리로 수업시간에 학교 바로 이웃동네에 불이 나자 담임 선생님마저 그녀에게 ‘원더우먼아, 너 어서 가서 불 끄고 오너라’라고 공공연하게 별명을 부르곤 했습니다.

이처럼 큰 키로인해 워낙에 놀림을 많이 받다 보니 어려서부터 그녀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숙기가 별로 없어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는데요.

그러다 꿈 많던 사춘기 시절에는 영어 과목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며 한때 통역관의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영어 테이프를 틀기 시작해 잠자기 전까지 들었으며 또한 학교에서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인지 영어 선생님이 그녀에게 ‘시라야, 넌 미국에서 살다 왔니’라고 할 정도로 그녀의 발음을 칭찬해주며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훗날 그녀가 연기자가 된 이후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영어 연기를 해보고 싶어 했는데 훗날 <여명의 눈동자>에서 미국 첩보원이 된 ‘여옥’을 연기하면서 그토록 바라던 영화 연기의 소원을 풀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길을 가다가 너무 예쁜 여자의 표지를 보고 잡지를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올리비아 핫세’였고 그 잡지에 있는 선물 응모권을 별 생각 없이 보냈다가 운 좋게 당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선물을 받기 위해 잡지사에 방문, 잡지사에서 채시라를 보자마자 모델을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연예인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한 후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집으로 설득 전화가 오자 당시 그녀의 아버지가 ‘한번 해보지 그래’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조언을 하면서 마침내 학생 잡지 표지 모델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렇게 잡지 모델로 시작해 이후 ‘가나 초콜릿’의 모델이 되어 긴생머리를 휘날리는 아름다운 소녀로 나와 당시 별명이 가나로 불리며 청순한 모습으로 수많은 남학생들을 설레게 했고 그리고 이를 계기로 청소년 드라마인 <고교생 일기> <꼬치미>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하이틴 스타로서 인기를 모으게 됩니다.

이처럼 광고 속 모델과 하이틴 스타로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늘 눈부신 선방의 대상이었고 성인이 된 이후 한국 드라마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여명의 눈동자> 출연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한국 드라마 사상 역대급 캐릭터라는 비운의 여인 ‘윤여옥’ 역할을 맡아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를 하자 이젠 얼굴만 예쁜 스타가 아니라 연기력까지 갖춘 보기 드문 연기파 미녀 배우로 당대 최고의 특급 스타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여명의 눈동자> 이후 보기 드문 연기파 미녀 배우로서 훌륭한 필모를 쌓아가게 되는데 <아들과 딸>에서는 누구나 환상을 가질 법한 도시의 부잣집 아가씨 ‘미연’을 연기했고 <서울의 달>에서는 달동네 내 속물이지만 사랑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는 복합적 캐릭터 ‘영숙’을 연기해 큰 호평을 받습니다.

한편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는 故 최진실이었는데 그런데 채시라 그녀가 평생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연기 대상을 1994년 드라마 <서울의 달> 1995년 드라마 <아파트>로 20대 시절에 두 번이나 연달아서 대상을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게 되자 이 당시 채시라는 역대급 스타성이라는 최진실씨를 능가하는 포스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로 활동하던 중 당대 음악보다는 외모로 주목받고 있던 가수 신성우를 만나 연애한 지 단 몇개월 만에 신성우의 청혼까지 받아들이게 되면서 대한민국 연예계를 그야말로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두사람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음에도 각종 tv 프로에 출연해 거침없이 애정 표현을 하며 공공연이 부부 직전의 관계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물론 이때 결혼 발표 및 약혼을 너무 빨리 진행시키며 각종 여러 방송에 나와 진한 애정을 표현하자 일각에서는 그들의 진보적인 액션을 두고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톱스타로서 경솔한 짓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당시에 흔치 않던 약혼식도 하고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커플 cf까지 찍을 정도로 애정을 과시하다 보니 당연히 무난하게 결혼하나 싶었는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하면서부터 두 사람의 사이가 조금씩 삐그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채시라 측은 한번 하는 결혼인데 뭐든지 최고급으로 할 것을 요구했고 하지만 신성우 측은 공인이므로 되도록 검소하게 할 것을 주장했으며 또한 이러한 이유들과 더불어 결혼 후 채시라의 수입 및 스케줄 관리 문제 생활 패턴에 관한 문제들까지 대두되면서 양간은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두 집안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골프 문제도 큰 화제가 되게 되는데 당시 딸의 건강을 이유로 골프를 권유한 아버지와 골프는 사치스러운 운동이니 젊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만류한 신성우 어머니와의 대립은 결국 감정 싸움을 낳기도 했습니다.

두 집안이 대립한 이후로는 골프 외에도 많았는데 당시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채시라 측이 불쑥 집안 내력을 알아야겠다며 신랑 집안의 족보를 원하기도 했고 또한 여배우의 통념상 결혼을 하면 그 주가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국민 배우로서 사랑과 신뢰를 한껏 받아온 채시라가 비교적 작은 인지도에 로커 신성우와 결혼을 한다는 것도 그녀의 집안에서는 크게 탐탁치 않아 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이 점점 쌓이다 보니 당시 신성우 측이 함을 보냈지만 채시라 측이 보내기로 한 예단을 보내지 않고 채시라의 아버지가 직접 약혼 예물과 사주단자를 돌려줌으로써 두 사람의 파원은 사실화 되었고 그렇게 이후부터 tv, 라디오, 신문 등을 통해 두 사람의 파혼 소식은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이대로 헤어진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신성우는 채시라와 만남의 주선자였던 한 방송국 피디에게 부탁을 해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가졌던 장소에서 마지막 회동을 가지기도 했는데 이 모습조차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얼른 승용차에 올라타야 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회동조차 제대로 못 하게 되자 당시 신성우가 헤어지면서 ‘집에 들어가서 전화해’라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러나 결국 채시라가 신성우에게 ‘나 자신 없어 그냥 정리할게’라는 말을 하면서 이후 두 사람은 깨끗이 남남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이처럼 결혼 발표 한달 만에 파혼 소식을 알리며 여배우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큰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그녀였지만 그래도 이별의 큰 아픔 뒤에는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게 되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 가수 김태욱이었습니다.

당시 채시라 그녀는 라디오 디제이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원래 김국진이 게스트로 와야 하는데 눈이 너무 많이 오고 길이 막혀서 못 오게 되자 지금의 남편 김태욱이 우연히 대타로 들어와 이후 4개월이나 고정을 하면서 급격히 가까워져 두 사람은 이후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다 1999년 연말에는 프러포즈를 받아 두 사람은 다음에 마침내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었고 그리고 이때 워낙에 많은 하객들과 기자들이 몰리다 보니 친척들도 못 들어가고 심지어 김태욱의 아버지조차 ‘나 김태욱 아버지야’라고 말하며 겨우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한편 원래 가수였던 그녀의 남편 김태욱은 그녀와 결혼할 무렵에 2년 정도 성대쪽에 마비가 와 더 이상은 가수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러다 채시라와 결혼을 하는데 당시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본인의 결혼식을 계기로 웨딩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 그녀의 남편이 웨딩 회사를 차렸을 때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채시라 남편이라는 것만 믿고 얼굴이나 빌려주겠지’ ‘그래봐야 얼마나 가겠냐’등으로 폄훼하는 시각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자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와 믿음의 기업과 이미지를 심어주게 됩니다.

그렇게 채시라의 남편 김태욱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인지 2021년 그의 회사는 상장을 앞두고 당시 560억 원의 돈방석을 기대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기도 했는데 하지만 생각보다 대폭 하향된 공모가로 채시라의 남편 김태욱 개인 돈으로만 45억 원의 현금을 거머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채시라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배우가 된 지 30년이 넘었는데 나름 굳건히 버티고 있는 비결이라고 하면 조급해 하지 않는 것이 비결이 아닌가 싶다.’

‘작품을 안하고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그 상황에 충실하고자하고 또 현장에 있을 때는 가정을 잊고 연기에만 몰두한다. 즉, 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한다. 이처럼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결국은 좋은 결과로 나온다는 그런 나만의 확고한 믿음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명품연기를 펼친 그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언젠가 TV에서 다시 볼 그녀를 위해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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