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에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원로배우 강부자, 그녀는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적부터 매우 활발하고 호기심이 많아 동네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들은 소식을 부모님께 자주 알려드리고는 했는데요.
또한 마당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스스로 작은 연극 공연도 자주 열곤 했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대학에 진학해 학교를 다니다가 우연히 탤런트 모집 공고를 보게 되고 처음 응시했던 시험에서 놀랍게도 한번에 합격을 하게 됩니다.

강부자가 탤런트로 데뷔한 후 같이 몰려다니던 남자 탤런트 동기가 셋이 있었는데 바로 배우 최정훈과 사미자의 남편 김관수 그리고 지금의 남편 이묵원이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기수라서 방송국에서 마주칠 일이 많았는데 그때 이묵원은 틈만 나면 강부자를 괜히 툭 치고 가곤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주변 동료들은 ‘묵원이가 부자 좋아하나 보다’라며 이야기를 하니 강부자 역시 설마 하는 생각에 어머니한테 한번 보여드릴까해서 남자 동기 3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누구를 데려와도 이런저런 이유로 전부 퇴자를 놓았다는데 그날 이묵원을 보고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성실하게는 생겼다’며 허락 아닌 허락을 하게 되는데요.
당시 강부자와 이묵원의 집이 가까워서 두 사람은 같은 버스에 탈때도 있었는데 어느날 버스 안에서 강부자가 이묵원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묻자 그는 ‘강부자씨가 해야 나도 한다’고 말하며 그렇게 강부자는 프러포즈를 받게 됩니다.

4년간 연애 후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기 위해 시어머니를 뵈러 가게 되었고 그렇게 이묵원은 강부자를 서울 정릉의 한 골목길로 데리고 가게 됩니다.
인사를 가는 길에 웬 4살짜리 꼬맹이가 허름한 차림에 골목에서 뛰어놀고 있었고 알고보니 그 아이는 남편과 24살 차이 나는 막내 시동생이었습니다. 당시 이묵원의 집은 형편이 넉넉치않았는데 이때 강부자는 ‘내가 이 집 기둥이 돼야겠다’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훗날 고백하길 ‘사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자신이 철이 없었다’고 털어놓게 되는데요. 그렇게 결혼한 강부자와 이묵원은 5개년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은 바로 1년 안에 백색 전화기 놓기, 3년 안에 집사기, 5년 안에 자가용 장만하기였는데요.

그렇게 두 부부는 전세 10만원짜리 다다미 방에서 첫 신혼 생활을 하다가 첫 아이를 낳고 아이가 기어다닐때쯤 전세 25만원짜리로 이사 가게 되고 이후 열심히 돈을모아 첫 집인 서울 이촌동 한강맨션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강부자의 남편은 이제 살만해지니 아이가 막 돌이 돼서 아장아장 걸을때 아내 몰래 외도를 하기 시작했고 동료 여자 연예인과 호텔에서 지내며 사흘씩 집에 들어왔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기 위해 집에 와 계실때도 사위가 보이지 않자 ‘이서방은 대체 언제 들어오냐’고 할 정도였고 그럴때마다 그녀는 ‘남편이 술 약속이 있다’며 두둔했지만 사실 이묵원은 밖에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던 것이었습니다.
한때 그녀는 KBS <아침마당>에 나와 자신은 ‘절대 안하겠다’고 결심한것이 3가지가 있다고 밝혔는데 바로 ‘빨간립스틱, 담배, 이혼’이라고 말했습니다.
‘헤어질 거 아니면 용서해야 된다, 이세상에 힘든거 참아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남편의 지독한 외도에도 53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냥 참는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강부자는 만약 자신과 남편이 이혼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묵원이 많이 참았겠지 강부자가 좀 극성스러워 그 부인하고 사느라고 애썼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자신이 지금껏 너무너무 참고 살았다고 하는데요.
“남편이 겉으로는 웃고 선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다. 신혼때도 이 사람이 화가 좀 났다 싶을 때 한마디만 더 하면 항상 뭐가 날아왔다고 했으며 재떨이를 던지면 장롱이 푹 들어가고 숟가락을 던지면 숟가락이 휘기도 했다”라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방송에서는 즐거운척 모든것을 참아내며 활동하던 강부자는 어느날 故 정주영 현대회장과의 오랜 친분으로 국민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강부자는 자신의 인생 중에 국회의원을 했던 그때가 제일 후회된다고 하는데요.

그녀가 국회에 입성하고 뉴스에 나오니 여기저기 ‘물건 좀 팔아달라’ ‘불쌍한데 기부 좀 해달라’ 이러니까 거절을 못해서 하나하나 다 들어주다 보니 정작 생활비가 거덜 날 정도까지 베푸는 행동을 했지만 정치하는 동안 그녀는 안 좋은 소리만 잔뜩 듣게 됩니다.
게다가 강부자는 연예계에 소문난 뚜쟁이라는 루머까지 돌게되면서 자신을 둘러싼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지저분한 이야기에 “한때 내가 ‘뚜쟁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그거다. ‘사람들이 왜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거를 내가 한다고 알고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루머가 왜 당시 왜 돌고있었는지 보면 기업 총수들과의 친분때문이였을듯 보입니다. 삼성 故 이병철 회장과 현대 故 정주영 회장이 그녀의 팬이었으며 또한 강부자는 무려 13년이나 농심 라면의 전속 광고 모델로도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농심 故 신춘호 회장이 별세했을 때 강부자는 빈소를 찾아 ‘늘 존경하던 분이었는데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강부자에게는 주변의 지인이나 동료들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수십년간 강부자와 친자매처럼 지냈던 배우 김자옥도 60대의 나이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는데 ‘자옥이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해서 비 오는 날에는 참 넓은 카페에 모여서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고 가을 바람이 쓸쓸하게 불거나 봄비가 주룩주룩 내릴 때면 자옥이가 함께 있으면 좋을텐데’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지금도 든다고 합니다.
또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배우 전미선과는 사망 전날까지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미선과 10여 년간 함께 연극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며 ‘딸보다 더 딸 같은 후배였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센스 있고 착하고 정렬적이고 예쁘고 좋은 배우였는데 어쩌다 그렇게 우리랑 다른 세상을 갔다’며 ‘공연 후 소주 한 잔씩 먹다 보면 전미선이 2차를 가자고 조르곤 했는데 술에 취한 전미선은 강부자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고 뽀뽀도 하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동네에 살아서 연기 자문을 구하러 강부자의 집으로도 자주 찾아오곤 했다며 고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 먹먹함을 자아내기도 했는데요.

젊은 시절 어려운 형편에 남편과 결혼하여 열심히 활동하며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신혼부터 한없이 외도를 하며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연예계 뚜쟁이라는 루머로 심적 아픔을 겪어야했던 강부자씨, 건강하게 앞으로 웃을 일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