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마세요..” 문둥이라 불린 어린시절을 지나 폐암 3기 후반에 시한부 선고로 결국.. 배우 윤문식의 안타까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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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숙한 연기자로 유명한 배우 윤문식, 1943년생인 그의 나이도 어느덧 80이나 되었고 투병으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시한부 판정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사실 너무나 가슴 아픈 이유가 있었습니다. 윤문식은 어릴 적 고작 9살밖에 안 되었을때 아버지가 젊은 아내와 7형제를 덩그러니 남겨놓은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잃은 그는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새벽장에 나가 생선 장사를 하게 되었고 생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셨던 어머니로 윤문식은 어릴적부터 아침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아침에 밥을 먹으면 하루 종일 속이 거북해서 아침밥을 거른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당시 동네 아이들은 윤문식을 ‘문둥이’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얼굴에 허옇게 부스럼이 생기고 검버섯이 피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생계로 인해 그를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했기에 행색이 엉망일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러던 어느날 그는 동네를 돌아다니던 ‘악극단’을 보고 혼을 빼앗길 정도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는 악극단을 보며 천막 앞에 쭈그리고 앉아 혼자 대사도 외워보고 혼자 ‘견우’ 역도 맡고 ‘직녀’ 역도 맡으며 1인극을 하다가 농고 1학년 학예회때 처음 연극 무대에 서게 됩니다.

그것이 그의 오랜 연기 경력의 시발점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던 윤문식은 돈을 벌기 위하여 무작정 가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갈 데가 없었던 그는 결국 동두천으로 가게 됩니다.

매형이 다니는 미군 부대에 가면 먹고 잘 수는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인데 거기서 미군 심부름을 하는 ‘하우스 보이’ ‘이발소’ ‘면도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했고 새우잠을 자는 와중에도 배우가 되겠다는 소망을 불태웠습니다.

그렇게 윤문식은 1964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꿈에 그리던 대학 강의실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윤문식은 아찔함을 느끼게 됩니다.

칼날같이 주름을 세운 양복 바지에 번쩍번쩍 윤이나는 백구두를 신은 신사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고 멋쟁이란 멋쟁이는 모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다 모여 있는것 같았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맨 뒷자리로 가려는데 그때 자신과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지금도 연극 무대를 지키고 있는 최주봉과 박인환이었는데요.

박인환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인지 허름한 양복으로 신입생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최주봉과 윤문식의 모습은 누가봐도 시골에서 방금 상경한듯한 모습이였습니다.

밑단이 너덜너덜하게 해진 군복바지에 검정 운동화를 끌고 올라온 가난한 유학생 삼인방은 따돌림을 당한건지 그들끼리 어울려 다닌건지는 모르겠지만 못난이 삼형제로 불리며 그때부터 오랜 인연이 시작되게 됩니다.

당시에도 무대는 따로 없었고 제방이나 학교운동장이 무대였는데 낡은 조명기구를 둘러매고 북과 꽹과리를 치면 한꺼번에 500여 명의 관객들이 몰려들기도 했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배우의 길로 들어선 윤문식의 젊은시절은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연극을 계속하면서 ‘한국의 정서’를 찾기 위하여 노력했는데요.

결국 윤문식은 판소리, 민요, 고전 무용과 탈춤을 배우면서 한국적인 정서를 함양했고 이것이 나중에 ‘마당 놀이’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가난한 배우 생활을 하던 윤문식에게 어느 날 갑자기 소개팅 제안이 들어오게 되는데 76년 한 연극회 선배가 느닷없이 찾아와 ‘자신의 여동생 친구가 공연 팜플렛을 보고 너를 찍었으니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당시 윤문식은 떠돌이 연극쟁이를 이해해 줄 여자도 흔치 않으려니와 행복한 가정이란 단어가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서 결혼할 생각보단 맘편히 술이나 한잔 걸치자는 생각에 선뜻 자주 가던 허름한 선술집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고 이때 윤문식은 첫 번째 부인이었던 이영순을 만나게 됩니다.

윤문식은 그녀와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하며 막걸리에 안주는 필요없고 양배추 쌈이 놔달라며 주문부터 했는데 그때 이영수는 그것 말고 자기가 살테니 드시고 싶은 안주를 고르라며 결국 돼지 족발을 큰 접시로 시키게 되는데요.

씻지도 않은 손으로 족발을 뜯으며 간만에 아주 맛있게 술을 들이키던 윤문식, 인생의 반려자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고 다음날 다시 그녀를 만났는데 그제서야 그녀가 초등학교 교사이고 장인 어른이될 사람이 교장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날 이후 둘은 90일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나게 되는데요.

당시 빈털털이였던 윤문식 대신 술값이며 담뱃값을 항상 그녀가 모두 계산했다고 하는데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두 눈이 퉁퉁 부어 나타납니다. 알고보니 집안의 반대가 보통 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데요.

자기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진 윤문식, 결국 장인어른의 승낙이 떨어지기도 전에 산장을 빌려 결혼식을 치르는데 30살이 넘도록 교직 생활을 하며 알뜰살뜰 저축해온 아내는 살집까지 미리 마련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둘은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후 3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처음에는 행복했지만 가족의 생계를 혼자서 책임지는 것이 힘들었던 아내는 결국 윤문식에게 참았던 화를 터뜨리게 됩니다.

40살 되던 해 난생 처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윤문식은 당시 국립극단에서 받은 첫 월급 26만4천원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바치게 되고 그의 아내는 그런 모습에 너무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10원도 허투루 쓰지 않을 정도로 알뜰했던 윤문식의 첫 번째 아내, 그러던 어느날 중학생 두명이 꽃을 사들고 분장실로 윤문식을 찾아왔고 장학금을 줘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고 하는데요.

나중에 알고보니 바로 윤문식에게는 짜게 굴었던 아내가 몰래 선행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윤문식은 아내가 정말 사랑스러웠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안정된 생활을 기반으로 윤문식은 80년대 한국마당 놀이의 중흥기를 이끕니다.

당시 정월 초하루면 tv에서는 어김없이 마당놀이 시리즈가 펼쳐졌는데 윤문식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됩니다.

그러던 90년대 초반 그의 아내가 갑자기 당뇨를 앓게 되고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며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게 됩니다. 결국 15년의 투병생황을 하던 아내는 끝내 2007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윤문식은 아내와 산 세월이 30년인데 그중 15년이나 병간호를 했던 것인데 그 당시에 더 자상하게 해줄걸이라며 아직도 후회가 된다고 하는데요.

윤문식은 후에 계산을 해보니 아내와 함께 한 세월중 무대에 나가랴, 자식 챙기랴, 돈 걱정하랴, 바쁘게 사느라 오롯이 부부만의 시간을 보낸 건 1000일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끔찍하게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었다고 느낀 윤문식은 후에 딸을 시집 보낼때 ‘자신에게 효도할 생각은 하지 말고 대신 10일중 하루는 부부 둘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충고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아내와 사별한 윤문식은 4년 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신난희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같은 아파트 이웃으로, 가끔 마주칠 때마다 항상 윤문식을 보며 웃으며 인사를 했다고 하는데요.

알고 보니 둘다 혼자 사는 상태였지만 처음에는 결혼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윤문식에게 ‘밥 좀 사달라’고 하게 되었고 드라마 촬영 얘기를 하다가 촬영 스케줄이 있어 지방에 내려갈 일이 생겼지만 차가 없었던 윤문식에게 신난희는 자신이 운전해 드리겠다고 하면서 매니저 역할을 자청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께 지방에 내려가는 길에 그녀는 윤문식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하게 됩니다. 당시 윤문식이 공연하는 장소에서 그녀의 또 다른 집이 굉장히 가까웠는데 한두번 그녀의 집에서 자고 공연장에 가게 되면서 결국 동거까지 하게 되고 나중엔 정식으로 혼인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윤문식은 여전히 자신의 전부인을 잊지 못하는 상태였는데요. 그런 부분이 조금 섭섭했던 신난희에게 윤문식은 말하기 “전처가 살아있을 때 더 좋은 말을 할걸, 짜증 덜낼걸 그런 여한이 많은데 전처 기일이 재혼한 아내의 생일이고 그래서 ‘전처의 환생이 지금의 아내’라는 생각에 더 잘해주고 있다.”면서 그녀를 달랬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재혼 생활을 하던 윤문식은 어느날부터 날만 추워지면 기침이 늘게 되었는데 평소에 담배를 많이 피우긴 했지만 유난히 이상함을 느낀 아내의 제안으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게 되는데요.

병원에서 윤문식은 폐쇄성 폐질환을 진단받게 되고 그후 큰 병원을 찾았더니 폐암 3기 후반이라는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때 의사에게 ‘얼마나 살 수 있냐’고 하니 ‘앞으로 7개월 정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게됩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에 갑자기 앞이 캄캄해진 윤문식, 이제 재혼해서 행복을 다시 찾나 싶었는데 아내에게 “7개월간 행복하게 살다가 헤어지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까지 전하게 됩니다.

당시 윤문식은 의사에게 ‘어떻게 갑자기 그럴 수가 있냐’며 항암 치료까지도 거부했다고 하는데 그러던중 신난희는 ‘다른 병원에 한번 더 가보자’고 말하게 되었고 하늘이도 왔는지 천만 다행히 그 병원에서 폐암 초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후 두 번째 아내인 신난희의 지극한 간호를 받은 윤문식은 폐암 수술을 하면서 끝내 완쾌까지 되었는데요. 얼마 후 그는 방송에 나와 “사실 나는 얼마 전에 없어졌어야 할 사람인데 아내 덕분에 앞으로도 그동안 산 것만큼 더 살 것 같은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며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전처를 떠나보낸 것도 모자라 본인도 죽음의 문턱까지 갈 뻔했던 윤문식, 다시 재혼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 그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활동하기를 기원하며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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