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먹먹하실까..” 평생을 힘겹게 살아온 배우 이정길 결국..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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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배우 이정길, 그가 태어나고 해방되었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해방의 기쁨보다는 혼돈의 시간이었고 출생 이듬해 안타깝게도 아버지를 떠나보냅니다.

이후 6.25가 터지면서 그의 어머니는 유일한 자식인 이정길을 데리고 단신으로 월남하게 되었고 이후 고생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데요.

가난과 함께 식구들 모두가 끼니조차 챙기기도 어려웠던 60년대, 이정길은 학교를 다니면서 원대한 꿈을 꾸긴 커녕 하루하루 적응해서 살아가는 어려웠던 시절을 보냅니다.
 
취업을 위해 기술자의 길을 택한 그는 한양공고에 진학한뒤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게 된 후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에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연기자의 꿈을 가슴속 깊이 품게되고 어머니 몰래 서라벌고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당시 한양공고를 졸업하면 한양대에 진학해서 대기업 취업까지 가능했던 시절고 그의 어머니는 2대 독자인 아들이 기술을 배워서 좋은 회사에 다니기를 원했지만 이정길은 집에서 나올 때는 한양공고 교복을 입고 나왔다가 근처 가게에서 몰래 다시 서라벌고 교복을 갈아입고 등교를 합니다.

그러다 죄책감에 추후 어머니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게 되지만 깜짝 놀란 어머니는 그만 혼절하시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대학 1학년이었던 63년에 이순재, 여운계, 오현경 등 현재 대부분 국민 배우가 된 ‘실험극장’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 배우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당시 국립극장 대기실에 들어가면 주연급 연극 배우들은 개인 옷장이 하나씩 있었지만 신인이였던 이정길은 동기 4명과 맨 끝에 있던 한칸을 함께 써야 해서 옷을 넣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동기들과 ‘우리가 옷장 맨 앞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하며 무명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요.

이후 이정길은 열심히 활동에 임했고 입단 후 고작 23년 만에 초스피드로 주인공 발탁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러던 그는 대학 2학년 때 용돈도 벌고 학비도 벌기 위해 tv 연기자 공채 시험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4차 시험을 모두 통과하면서 연극 배우를 하면서 방송 탤런트로도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방송은 녹화기가 없어서 모든 방송을 생방송으로 송출하던 시절이었고 드라마 또한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방송 환경은 열악해서 살얼음판 같았다보니 탤런트 기준 ‘1조’에는 ‘임기응변에 능해야 한다’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이정길에게는 드라마 출연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았습니다.

한달에 한두번 단역이 들어오면 도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동선을 체크하며 보름이나 준비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고생해도 출연료를 고작 500원 받는게 다였을 뿐이었고 받은 돈은 남자 배우들끼리 출연료를 모아 1500원으로 같이 명동을 가서 좋은 술은 못 마셔도 동그랑땡에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5급 공무원의 월급이 4800원 하던 시기였는데 6,70년대에는 대사 갯수에 따라 출연료가 정해지던 시절이였습니다. 이에 ‘기계적으로 대사 몇마디으로서 과연 얼마나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라며 이정길은 20대 후반을 고민 속에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그렇게 연기 열정을 불태우던 그는 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합니다. 시대극, 사극, 멜로 등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한가지 연기만 하면 시청자들이 2,3번은 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다양하게 연기를 펼쳤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빛났던 것일까, 영화 쪽에서도 여러 곳에서 섭외 요청이 오게 되었고 한 번에 4편의 영화에 출연 계약까지 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영화 계약을 하고 첫 작품을 찍으러 간 이정길은 당시 중3 학생이던 임예진을 상대 역으로 만나게 됩니다.

당시 갓 데뷔해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임예진은 어머니가 매니저처럼 현장에 동행해서 머리를 빗겨줄 정도로 어렵다보니 그 모습을 본 이정길은 ‘저렇게 어린 배우가 연기를 잘 할 수나 있을까?’ ‘이거 계약을 취소해야 하나?’ 걱정까지 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촬영 첫날, 둘이 첫 신을 찍게 되는데 카메라가 도는 순간 임예진은 똘망똘망하게 의외로 연기를 어찌나 잘하던지 이정길은 칭찬도 해주었을 정도로 깜짝 놀라게 됩니다.

훗날 이정길은 수십 년 후 임예진과 드라마에서 중년의 부부 역할로도 출연하게 되는데 임예진은 그런 이정길에게 ‘자신과 부부 역할을 계속하시려면 덜 늙으셔야 한다’고 우스갯 소리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젊은 시절 인기 배우로 여러 작품에 겹치기 출연까지 하며 바쁘게 활동하던 이정길, 그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작이 있습니다. 바로 <암행어사> 입니다.

드라마 <암행어사>는 ‘암행어사’ 이정길과 ‘갑봉이’ 임현식의 찰떡 호흡이 빛났던 인기 드라마로 80년대 무려 3년 7개월이나 매주 방영이 되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이정길은 당시 인기도 얻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하루 빨리 이 드라마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라고도 생각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극 세트장이 전국 도처에 많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대궐 신을 찍으려면 용인민속촌까지 가야 했고 산골을 돌아다니는 신을 찍으려면 남원 등지로 가야 했는데 이렇듯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대단히 강행군의 일정이 계속됐습니다.

게다가 액션 장면까지 찍으려면 카메라 1대만으로 여러 장면을 반복해서 찍었기 때문에 액션 파트 10분짜리를 밤을 새고 찍었고 나중에 먼동이 트면 급기야 해가 비치지 않는 숙소까지 이동해서 찍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고 육체적으로도 너무 고달픈데 다른 주말 드라마와 일일 드라마까지도 함께 출연했기 때문에 몇번은 스케줄이 도저히 안 돼서 촬영을 할 수 없게 됐는데 이때문에 <암행어사> 드라마 결말 부분은 대역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당시 이정길이 워낙에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기 때문에 대역 배우를 보고 이정길이 아니라고 곧바로 알아차리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이정길은 배우로 수십 년을 꾸준히 활동했고 그 결과 어느덧 중년 신사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인생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찾아옵니다. 그는 결혼 후에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집에서 살았고 홀로되신 장모님까지 한집에서 함께 모셨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또한 결혼 후 1남1녀를 낳았는데 그 중 딸이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17살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이정길은 무려 13년이나 딸과 떨어져 살게 되었고 이에 딸에 대해서는 더 애틋한 감정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딸이 수준급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활동을 하고 있지만 10대 어린 나이의 딸을 홀로 타국으로 보낼 당시의 아버지의 심정은 얼마나 걱정이 되고 많이 보고 싶기도 했을까요.

더구나 이정길은 과거 mbc <사람이 좋다> 프로에 출연했을 당시 젊은 시절 함께 활동했지만 세상을 먼저 떠난 김자옥과 김영애의 납골당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신인 시절 김자옥과 한 작품에 출연해 스타가 되었고, 그녀들과 오랫동안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추곤 했는데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이정길은 ‘애틋했던 과거 한 편으로 묻히고 말았다’며 ‘옛날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부디 편안하게 있으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가 버렸고 이정길은 벌써 팔순을 코앞에 둔 황혼의 나이가 되어버린 것인데 어린 시절 2대 독자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여의더니 전쟁까지 터지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월남해서 평생을 실향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또한 젊은 시절 함께 했던 동료들을 먼저 떠나보내야했던 가슴 아픔을 느끼고 있는 그가 더이상 다른 아픔을 겪지 않길 바라며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방송에서 좋은모습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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